영화 속의 종말은 개연성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작은 신호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잡아내기에는 미세한 것들이거나 간과하기 쉬운 것들이었다. 신이 진정 이 세계를 사랑했더라면 종말이 오지 않을까. 답을 알아낼 수 없는 질문이었다. 진은 신을 믿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은 영화를 보다 어느 새인가 잠든 유권을 바라보며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
아주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이면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는 했어요. 선물로 별을 달라는 내용이 주였죠. 동생이랑 같이요. 처음에는 각자 하나를 달라고 했다가, 조금 더 커서는 둘이 하나를 달라고 했어요. 선물로 별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기 때문이라고 믿었거든요. 조금 더 커서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걸 알았죠. 산...
어느 주말, 기숙사에 홀로 남은 희는 생각했다. 나는... 정말 개새끼라고. 누가 나를 개새끼라 부른다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늘상 생각해왔지만 이 순간 만큼은 누가 나를 개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었다. 사람이라면 이래서는 안되었다. "아..." 희는 머리를 감싸쥐며 쿵, 벽에 머리를 박았다. 아플 법도 하건만 고통보다는 자책감이 앞섰다. 그걸 어떻게 생각도 ...
*Trigger Warning* !익사와 자살, 그리고 바다에 관한 은유적인 묘사가 있습니다! 물고기가 되고 싶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나 또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다른 이의 의미까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막연히 추측하고 가늠해본다. 당신이 물고기가 되고 싶다 말하며 바다로 뛰어들었던 것에 관하여. 그 순간 가장...
항상 그래왔듯 앨서가 러브를 찾은 것은 비 오는 날의 일이었다. 런던이 늘 그렇듯 비는 주척거리며 내렸고 날은 우중충하니 사람들 얼굴도 꼭 그와 같았다. 러브는 지겨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방문한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앨서는 검은 우산을 접어 털고 우산 꽂이에 얌전히 꽂았다. 러브는 앨서의 방문이 반가운 모양으로 그를 보곤 웃어보인다. 왔어요? 여...
편지의 마지막 줄을 읽고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친다. 그 표정을 마주하고서야 당신을, 휘라는 사람을 조금 알게 된다. 당신은 아이처럼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웃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정말 드물어서, 언제든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편지를 받아 곱게 일기장에 끼우며 당신은 노래하듯 고향을 이야기했다. 피리 소리로부터 시작되는 그의 기억을....
당신이 방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였다. 한 손에는 투박한 가죽 커버로 덮인 책을 든 채였다. 나는 힐끔 눈길을 주었으나 크게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퍽 친숙한 모양새로 옆에 앉아 책을 펼치고 입을 뗐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한 척이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은 것은 북쪽, 그러니...
새들은 자꾸 북쪽으로 날았다. 북쪽은 그저 찬 바람만 부는 황무지로만 배웠는데도 그랬다. 나이 든 사람들은 새가 북쪽으로 향하는 이유가 그곳이 신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라 믿었으나 나는 신이 공평한 거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모순적이게 느껴졌다.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신과 가장 가까운 이들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착실한 신도이며 그의 가장 총...
당신의 저택은 여름 정원이 자랑거리였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이 태어나자 너무나 기뻐 그 곳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했다고 했다. 정원 한 가운데의 가제보부터 아주 가장자리의 장미덤불, 그리고 정원에 피어나는 모든 장미의 종류까지. 모두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정원사는 말했다. 나는 이제껏 이토록 많은 종류의 장미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 사실은 장미를 보...
이 세상이 각자에게 할당된 악몽을 맡아야만이 굴러간다면 당신과 내 몫으로 돌아온 악몽의 총량은 어떻게 될까? 잠에서 덜 깬 채 거실로 나오자 발코니 창 밖으로 당신의 뒷모습이 보인다.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하며 필히 그래야만 한다는 식의 단호한 뒷모습이다. 길게 묶은 뒷머리가 가볍게 흔들림과 동시에 내뿜는 연기가 형체를 인지하기도 전에 흩어진다. 그것이 당신...
가까이 다가갔다간 불타버릴지 몰라멀찍이 보는 게 좋아 반짝이는 것들은해피엔딩을 꿈꾸는 둘만의 수호성은일찍이 죽어버린 별일지도 몰라…네가 웃던 그 방식의 연약함에 대해서온종일 일주일 또 며칠을 생각해눈먼 이들의 새벽에 떨어진 혜성처럼붙여진 이름이 없어 서러운 감정/줄리아 하트, 남십자 어떤 낮에는 꿈을 꾸었다. 꿈들은 어느 느긋한 주말에 함께 쿠키를 굽던 그...
할로윈은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날이라고 스승님이 말해주셨던게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데이터로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는 돌아오기를 바랐다. 죽음은 누군가를 잃는 일의 명사형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잃은 것들이 모이는 별에 그들 또한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니 할로윈은 그들이 친히 이곳까지 발걸음 해주는 날이라 생각했지. 에스텔은 일년에 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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