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홍은 아마 오래도록 답을 찾지 못할 질문에 매달렸다.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종류의 질문으로, 대답은 항상 부정이었기에 더 불쾌했다. 고민한다는 것은 긍정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 아닌가. 천하의 여담홍이 후회라니! 살아오면서 한 자신의 모든 결정이 옳다고 믿어왔던 담홍으로서는 당황스러운 고민이었다. 당황스럽고말고. 거기에 불쾌함을 한껏 끼얹은 ...
이제는 빈 허공이다. 알면서도 어도러블은 사랑할 구석이 없는 거리에 발을 내디뎠다. 도시는 이전과 같다는 사실 하나가 문득 몸서리치게 날카로운 날을 드러낼 때가 있는 것만 뺀다면 지루할 정도로 평화롭기만 했다. 따지자면 이곳은 폭풍의 눈인 셈이다. TV에서는 변화는 삶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연설을 멈추지 않았다. 어도러블은 그 변화에...
담홍은 모든 것에 쉽게 끌리고 쉽게 질렸다. 아마 그것은 그가 호기심이 많았던 탓일 테다. 그러나 세상 대부분의 신비는 그가 밝히기도 전에 다른 누군가가 파헤쳐 놓았으므로 실체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꾸준히 시선을 줄 만큼 신비로운 것은 세상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말로, 담홍이 여태 그 비밀을 알아내지 못해 붙든 것은 이 세상에 ...
0. 한때는 손에 쥐고 있었지만 이제는 잃은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 무엇을 잃었는지도 가늠할 수 없는 모호한 것들 말이야.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것과 여러번 버리고 떠나보내도 돌아오는 것. 아무리 곱씹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나 단 한 번 혀 끝을 대었을 뿐인데도 녹아버리는 달콤한 감정에 관한 생각은 무슨 짓을 해도 멈출 수가 없어. 어떤 것은 손쉽게 ...
1. 아나벨라는 앨서의 집에서 목적없는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오래전 잊혀져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어死語로나 표현할 수 있을 법한 햇살은 새삼스러울 만큼 포근하고 편안하기만 했다. 이런 온기를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던 가까운 과거와는 대비되는 빛이었다. 이런 햇살 아래에 앉아 가만 생각에 잠기면 문득 낮잠에 빠져들듯, 평화...
To. 진.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항상 편지 감사합니다. 기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새삼스러운 안부가 반가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럭저럭 지낸다고 했지만 그래도 잘 지내냐고 물을게요. 이 편지가 도착할 때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보다 더 나은 하루를 보내고 있기를 바라요. 진도, 저도. 애인이 또 바뀌었었다는 문장에서...
To. 캐시에게.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기만적으로 들릴까? 하긴, 내가 언제 이런걸 신경 썼다고. 잘 지내고 있니? 나는 그럭 저럭 지내고 있어. 회사 일이 다 그렇지 않겠니. 세상 사는 일도 그렇고. 애인이랑 또 헤어졌냐고 묻지는 마. 만나면 헤어지는 일은 당연하니까… 그새 또 애인이 바뀌었었어? 하고 놀랄 네 얼굴이 선명하다. 대놓고 놀라는 표정은 짓지...
그 날 아침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나의 차이점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부분이라는 것이 문제였다만. 정말, 정말… 유진은… 평소처럼… '이걸 어쩌면 좋지?' 이 사태를… "아이씨! 사람 몸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쩌자는거야!!"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도 오늘 처음 몸소 겪게 ...
요리는 검소하고 독특했다. 이곳에서는 쓰지 않는 조리법이지만 익숙한 향신료를 썼으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나는 버릇처럼 코를 킁킁, 한 번 들썩였다. - 오해 하지 말아요. 무례한 의도가 아니었음을 밝히고 싶었다. 먹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고, 믿지 못해서도 아니라고. 말주변이 없어 그런지 해명은 잘게 썰린 당근보다 짧았다. 백번의 ...
다른 이름은 모두 사장되어 내게 남은 것은 무신이라는 이름 하나뿐이니, 이가 뜻하는 것이 무신武神인지 무신舞神인지, 혹은 무신武臣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부르지 않는 이름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라, 명예 드높은 신이었던 기억이 오랜 호접몽이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름이 있어 그것을 다정히 불리는 삶은 어떠했는지 더는 기억하지 못한다. 영원한 수명을 삶...
0. 유진은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무언가는 시간일 수도, 사람일 수도, 혹은 그 외의 무언가 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정해진 시간이 오면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장소로 이동할 것이고, 배워온 것처럼 웃고, 정제된 언어를 쓰게 될 것임을 확신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마치 잘 만들어진 태엽 인형처럼 보이겠지. 습...
가슴이 두근거리나요? 도무지 잠에 들 수 없다구요? 사랑의 열병에서 당신을 구해줄, 단 하나의 방법! 레지스는 조잡한 전단지의 끝이 너덜거릴 지경이 되어서야 그것에서 눈을 뗐다. 평소 같았으면 꾸벅꾸벅 졸고 있을 시간에 생산성도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에게 큰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었을테다. 그러니까, 가령… 전단지에서 말하는 '사랑의 열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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